시선(視線)
갈등과 화해의 변증법
- 글 권희경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학 교양 수업에서 변증법(辯證法: dialectics)을 배웠을 때의 생경함과 좌절감이 기억납니다. 처음 들어보는 개념 자체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대한 교수님의 추상적인 설명, 그리고 그것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는 동료 학우들의 표정들. 무엇보다 책에는 그보다 더 난해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해력이 달리는가 보다’하고 자책하면서 안 그래도 들을 게 없어(라고 쓰고 ‘인기 강의 선착순에 들지 못해’라고 읽습니다) 마지못해 신청했던 수업에서 철학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지요.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변증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동일률(同一律)을 근본원리로 하는 형식논리에 대하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논리.” 아! 여전히 저에게는 어렵습니다.
202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에도 헤겔의 변증법이 나왔습니다. 원고지 열 장 가량의 지문에 여섯 문제가 달린 소위 ‘킬러 문항’이었습니다. 수능이 끝난 이후 SNS에서 수험생들의 반응은 좌절 일색이었습니다. 보도에 소개된 몇 개만 소개하자면, “헤겔 집 주소 알려주세요. 저 진짜 멘탈이 안 잡혔어요”, “수능 대비를 위해 리트(LEET) 기출문제까지 풀어야 하나?”, “니들 진짜 어떤 수능을 오늘 보고 온 거니? 할미는 다 읽지도 못해” 등이었습니다. 입시 관련 기관들도 일제히 헤겔 변증법 지문을 최고난도 문제로 꼽았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기자가 이 문제를 풀어 보았는데, 타이머 10분을 맞춰두고 풀었지만 8분을 초과했고, 한 문제를 틀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는 “제발 학교 출근했을 때 헤겔 설명해달라고 안 했으면ㅠㅠ” 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요. 저도 풀어본 결과, 몇 개를 맞혔는지는...비밀로 해두겠습니다.
처음 변증법을 접했던 때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나 돌이켜 보니, 그때 그 대학 강의실에서 질문 하나 없었던 이유가 저를 제외한 모두가 변증법을 다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심리학에서는 이를 일러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질문도 할 수 있는데, 그때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거지요. 그리고 철학이든 윤리든 개념을 알고 지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삶에서 실천하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변증법 문제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나와 다른 견해, 반대 의견을 수용할 수 없고 대안을 찾기 위해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사람의 지식은 효용이 없는 셈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은 이렇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진리는 찾기 어렵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 이를 언론 조정·중재에 견주어 본다면, 언론의 보도(正)-이를 반박하는 신청인(反)-조정과 중재를 통한 결과(合)인 것이지요. 갈등과 화해는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내고, 이 두 상태 사이에서 우리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갈등은 우리의 생활에 빈번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동시에 변화와 성장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변증법은 갈등을 이해하고 갈등을 통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화해는 갈등과 함께 존재합니다. 변증법에 따르면, 갈등의 대립되는 요소들 사이에서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갈등을 이해하고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상대방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갈등이 해결되고 화해가 이루어질 때 새로운 통합된 형태가 탄생하며, 이는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변증법은 갈등과 화해를 일종의 과정으로 간주합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양측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변증법은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통합된 관점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며, 결국에는 화해로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변증법은 갈등과 화해를 통해 지혜와 풍부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철학적인 도구로서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갈등이나 대립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관점은 동양 철학에도 있습니다. 유교는 관계 중심의 윤리 철학으로, 상호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서 갈등이나 대립이 발생할 때, 이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조화시키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공자가 지극한 덕이자 군자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칭송한 중용은 “나의 마음이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약용은 “사물의 마땅한 법칙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마치 저울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물건의 무게에 따라 추가 달리 멈추는 것과 같습니다. 군자도 중용하려면 반드시 시중해야 합니다”라고 하며 상황과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또 ‘역경(易經)’은 변화와 상호작용에 관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易(역)’은 변화를 의미하며, 64개의 괘로 이루어진 ‘변화의 판’ 위에서 서로 다르거나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만들어내는 변화를 예측합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지속적인 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균형을 찾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동양 철학에서 상호 관계, 조화, 균형, 자연의 원리 등을 중시하는 개념들은 변증법과 통하는 측면을 보여줍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서로 다른 의견이 절충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고, 또 변화의 출발이 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변증법과 중용, 역경 등은 동서양을 떠나 사람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갈등하거나 충돌하는 신청인과 피신청인 언론사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언론조정은 갈등과 화해 사이를 변주하는, 변증법의 실천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언론사람>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지난 1월의 주제가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였습니다. 갈등은 늘 있으니 이를 잘 관리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다시 갈등과 화해에 대해 쓰면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이 저에게는 여러 생각을 떠올리고 정리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과 집필의 기회를 주신 언론중재위원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웹진 <언론사람>이 이번 12월호를 끝으로
뉴스레터로 전환됩니다.
그동안 <시선(視線)> 코너를 연재해주신
권희경 부위원장님과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4년 1월, 뉴스레터 <언론사람>으로
새롭게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