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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낯설게 하는 장면들

엄마는 오펜하이머
- 영화 <오펜하이머>

  • 이성봉 (아웃스탠딩 기자)
우리를 낯설게 하는 장면들 이미지 1
그림 : 필자 제공

“유재석으로 살기 VS 박명수로 살기”

한때 밈(meme)처럼 돌던 밸런스게임입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비롯된 이 질문은 두 사람의 이미지가 상반된다는 걸 나타내죠. 유재석은 도덕적 결함이 없으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1인자, 박명수는 도덕적 결함이 있지만 할 말 하고 사는 2인자라는 캐릭터인데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겁니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에서 이 질문이 또다시 등장했는데요. 유재석은 여기서 대다수 사람들이 박명수를 선택하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명수 형을 왜 선택하는지 이해합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대다수가 박명수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스스로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겠죠. 유재석이라는 선택지는 모든 욕망을 절제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박명수라는 선택지는 어제도 오늘도 잘못해도 괜찮고요. 가끔 실수도 하고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불쾌한 날에는 주변 사람에게 툭툭거리는 날도 있죠. 그러다가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단 한 가지의 모습만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완벽한 직장인이라고 불릴지라도 집 안에서는 완벽한 아들이나 딸이 아닐 수 있고요. 사교성이 좋아서 인기가 많은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더듬거릴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수줍음이 많았던 회사 동료가 음악만 나오면 춤꾼으로 변신할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나아가 볼까요? 신체적 장애가 있음에도 평생을 바쳐 인류를 위한 이론을 만든 과학자가 자신의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울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세계인의 마음을 위로한 음악인이 이혼한 아내와 자식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실화인데요. 전자는 스티븐 호킹 박사이고요. 후자는 비틀스의 존 레넌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란 참 복잡하고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내성적이지만, 리더가 되고 싶어

그러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습니다. 흔히 이 영화를 ‘모순에 관한 이야기’라고 평가합니다.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이 모순적인 면모가 있기도 하고요. 그가 살던 시절 역시 모순적이기 때문이겠죠. 그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매우 내성적이었는데요. 정신과 치료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리더 자리에 가면서 갑자기 6,000명의 과학자를 이끄는,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는 인간으로 바뀝니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원자폭탄’ 역시 모순적인데요. 전쟁을 막기 위해 인간을 공격하는 무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만 명을 단 한순간에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면서 전쟁을 막겠다고 하는 모순적인 일을 오펜하이머가 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가 전쟁을 막겠다며 오펜하이머를 따르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전체가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 모순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많은 모순적 행위와 모순적인 사람들이 뒤덮인 상황에서 몇 번의 선택들이 이어지는데요. 그 선택들 또한 모순을 담고 있죠. 그 가운데 감정선을 따라가는 건, 모순적인 선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겁니다.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많은 인물들의 증언이 나오는데요. 각 인물의 말이 다 다르지만, 모두 틀린 점이 없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불륜을 저지르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어

우선, 그의 정치적 성향이 모순적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하길 바라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고요. 그의 친동생과 아내, 내연녀 등 많은 지인이 좌파 성향이었습니다. 게다가 좌파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고요. 스페인 내전 때는 좌파 성향의 정부에 수차례 지원금을 보내기도 했죠. 물론 그는 공산당원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생활도 복잡했는데요. 그는 사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키티’라는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는데요. 결혼 전에 만났던 ‘진 태트록’을 결혼 후에도 만났습니다. ‘진 태트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심한 죄책감을 느꼈죠. 본인의 욕망 때문에 상처받을 아내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자신이 만든 무기로 인해 고통받을 사람들을 걱정했고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과학자의 사회적, 윤리적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죠.

오펜하이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양자역학’ 자체가 모순이기도 합니다. 양자역학은 원자, 분자 등 미시적인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현대물리학 이론인데요. 양자는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양자가 어떤 운동의 성격을 가질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요. 확률적으로만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매우 모순적인 현상인데요. 오펜하이머 역시 양자역학처럼 모순되면서 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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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러한 모순은 모순적이게도 ‘인간적’이라는 말로 치환됩니다. 완전무결하고 모순점이 없으며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건 인공지능의 특징이죠. 인간은 합리적으로만 사고하지 않습니다. 늘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죠. 감정이 섞여 있고요. 환경에 따라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죠. 인간이 늘 합리적이라면 교통사고 수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야 합니다. ‘종교’의 영역 또한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또 다른 말로 ‘입체적’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는 한 가지 모습만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모습만 보여야 한다면 매우 가식적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 때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재석 같은 삶보다 박명수 같은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제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 손이 가는 건 모순적인 우리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퇴사하고 싶지만 월급은 더 받고 싶은 직장인, ‘살 빼야지’를 입에 달고 살지만 치킨을 주문하는 다이어터, 저축하긴 싫지만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욜로족, 연애하고 싶지만 집 밖에 나가기 싫은 모태솔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만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고 있는 고3 수험생 등 수많은 ‘모순쟁이’들이 이 제목에 얼마나 혹했을까요?

모순적이지만, 이해할 수 있어

중요한 건 이 모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해하는 거죠. ‘모순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건 인간적인 면모를 버리라는 것과 같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인간의 모순을 이해하길 바랐습니다. tvN ‘알쓸별잡’에 출연한 놀란 감독은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그 과학자들의 행동을 판단하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이해하길 바라며 만들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가끔 어머니를 보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잔소리를 끊임없이 내뱉으면서도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보시고요. 명절이면 별로 차린 게 없다고 말하면서도 상다리가 휘어지게 반찬을 내놓으십니다. 자식 진로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친구들과 만나 자식 자랑을 내뱉기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항상 피곤하다고 말씀하시지만, 하루도 편히 쉬지 않고 출근하거나 집안일을 하셨습니다. 과거엔 ‘어머니는 왜 모순적일까’ 판단하려고 했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니 ‘모순적이라서 다행이다’라고 이해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