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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視線)

용어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
- 자살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

  • 권희경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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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고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지배하기도 한다는 것은 이제 진부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언론 보도에서도 어떤 용어를 쓰느냐에 따라 독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자살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도 언어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극단적 선택’은 언론이 ‘자살’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에서는, 사회 구성원의 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살과 관련한 정보 공유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보편적인 규범이었습니다. WHO는 자살 보도, 특히 유명인의 자살 보도 이후 자살률이 증가하는 현상(베르테르 효과)을 막기 위해 2000년부터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만들어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WHO의 권고기준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수립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거쳐 2018년부터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5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사 제목에‘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 합니다

2.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합니다.

4.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합니다.

5.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 유명인 자살보도를 할 때 이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준수해야 합니다.

<출처: 한국기자협회>

2013년,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제안하면서 드라마 <모래시계>를 제작한 고 김종학 프로듀서 사건 보도에서 ‘김종학 PD 고시텔서 자살’이란 기사 제목을 나쁜 예로, ‘드라마 거장 김종학의 모래시계 멈추다’를 좋은 예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후 ‘자살’이라는 용어를 피하다 보니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가 ‘자살’의 대체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내린 최후의 결정’임을 뜻하던 처음의 취지와 달리, ‘여러 선택 가능한 결정 가운데 개인이 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가장 극단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자살이 의지와 선택에 의한 결과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자살을 방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부정적 가치 판단이 들어있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살에 대해 왜곡된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을 듣고 자란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인구 십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지난 십 년 동안(2012년 대비 2022년) 각각 5.1명에서 7.2명으로, 19.5명에서 21.4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다른 연령대의 자살률은 감소한 현상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에 따라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살 사망자가 마치 본인의 ‘의지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하고, 이로 인해 자살이 선택 가능한 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 사망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부작용으로 꼽힙니다.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보는 것은,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보는 관점과도 배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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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원인을 어느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심리와 더불어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론이 자살을 어떤 용어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자살을 대하는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을 두고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학계에서도 이런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을 쓴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 교수는 자살을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이기적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자살을 선택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을 강화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며 “자살을 시도했던 생존자들에게 자살 시도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질문하면, 십중팔구는 자살 생각에 너무나 강하게 사로잡혀 있어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자살 명령 환청을 들었다는 환자도 있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사람 대부분은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음에 안도한다”고 했습니다. 자살 고위험군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살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며, 이를 개인의 선택으로 보게 되면 자살 생각이나 시도를 감추게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여지를 줄인다는 것이지요. 또,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는 어찌 보면 자살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우회하려는 자세가 반영된 신조어일지 모른다. 자살에 관해 떳떳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에 설치된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가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기자협회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개정을 요청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특위의 의견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자살은 결코 개인의 선택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위는 극단적 선택과 같이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 대신 차라리 자살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되, 자극적 보도를 지양하는 신중한 태도를 주문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르테르 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보도 지침이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살펴볼 때입니다. 자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누구나 힘들고 약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죽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문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나 위기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정신력이 약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힘든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이 아닐지 성찰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우울한 마음이 계속되거나 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면 주변 사람이나 전문가와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핀란드는 1990년 자살률이 30명 이상으로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였지만 적극적인 예방 정책을 통해 자살 사망자를 줄였습니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라는 국가적 자살 예방 정책을 시행하고, 자살에 대한 심리학적 부검과 함께, 자살 사별자의 애도를 도왔습니다. 학교와 병원에서 우울증과 자살 충동 여부를 점검해 자살 고위험자를 찾아냈고, 약물치료와 상담 등 적절한 개별적 치료를 제공했습니다. 술, 총기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언론의 자살 보도를 자제시켰습니다. 그 결과, 2019년 핀란드의 자살률은 13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2,906명, 자살률은 25.2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며, 핀란드의 두 배 가까이 됩니다.

OECD가 ‘피할 수 있는 죽음(Avoidable mortality)’의 범주에 자살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자살 예방은 촘촘한 지원망과 예방책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용어를 에둘러 표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유족 또는 자살유가족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영미권에서는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자살 사별 생존자(Suicide Loss Survivor)’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한 사람의 자살이 유가족에게만 슬픔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책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에서 고선규 박사는 자살 사별자의 범위가 직계 가족 뿐 아니라 지인, 자살 소식에 영향을 받거나 노출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고 강조합니다. 용어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