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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視線)

첫인상

  • 권희경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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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요? 연구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시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뇌를 거쳐 인식되는 데에는 0.2초면 충분하고, 이것이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3초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3초면 첫인상이 결정되는 거지요. 한 번 형성된 첫인상은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첫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면 적어도 40시간, 또는 200배의 정보량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더구나, 첫인상이 잘못 입력되면 그 사람의 좋은 면까지 거부하게 되는데, 이를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합니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비비안 자야스 교수 연구팀은 첫인상의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55명의 참가자에게 4명의 서로 다른 여성들의 사진을 보도록 했습니다. 4명의 여성은 각각 두 번씩 사진을 찍었는데, 한 번은 웃는 모습, 한 번은 무표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참가자는 이 중 하나의 사진만 보고, 사진 속 여성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얼마나 호감이 가는지 등에 대해 응답했습니다. 첫 실험이 끝난 뒤 1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참가자들에게 사진 속 여성을 직접 만나 얼굴을 맞대고 20여 분 동안 대화를 한 후 동일한 질문에 응답하도록 했는데요.

실험 결과, 처음 사진을 보고 호감을 느꼈던 참가자는 계속 호감을 유지했습니다. 사진 속 여성에 대해 ‘믿을 수 없다’, ‘불쾌감이 든다’ 등 부정적 인상을 받은 참가자도 일관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인상으로 받은 느낌은 더 강해져서, 호감을 느꼈던 여성에게 좀 더 ‘매력적’, ‘유능한’ 등 다른 긍정적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초두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뇌가 보고 듣는 정보를 본능적으로 일관성 있게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처음에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맥락을 형성하고, 그 맥락을 바탕으로 대상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맥락효과”라고 하는데, 우리가 멍하게 있는 중에도 뇌는 여러 정보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한 가지 대상에 오랫동안 매달릴 시간이 없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첫인상을 이미지화하여 저장하고 이후에 들어오는 정보를 얼추 짜 맞추는 방향으로 정보처리를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입력된 정보가 긍정적이면 나중에 입력된 정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처음에 입력된 정보가 부정적이면 나중에 입력된 정보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처음 들은 정보와 나중에 들은 정보가 배치되더라도 뇌는 나중에 들은 정보를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무시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집중력, 주의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다가 책을 막 덮었을 때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요. 영어 사전 한쪽을 아무리 꼼꼼히 외우더라도 전부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모두 뇌에 기록하고 주의 깊게 하나하나 해석하고 의미부여하고 집중한다면 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전 상태가 될 테니, 이를 피하고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빠르게 판단하는 논리회로를 수만 년 동안 발전시켜 왔습니다. 낯선 장소가 안전한지, 상대가 나를 해치지는 않을지 재빨리 판단해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뇌는 사물이나 사람을 최대한 신속하게 판단하는 성질을 갖게 됐습니다. 매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시 생각하고 의심하고 뜯어보아야 한다면 금세 지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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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자기충족 예언’입니다. 자기충족 예언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이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처음에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판단했던 자신의 예측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계속 같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기 때문에 첫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인상은 짧은 시간에 결정되기 때문에 외모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 사회는 얼굴이 지배한다”라고 일갈했나 봅니다. 사르트르는 키가 160cm 정도였고, 평생 심한 사시를 가진 외모로 인한 부정적 첫인상을 이겨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두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서 자라다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의붓아버지를 따라 다른 도시 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연모하던 소녀에게 거절당한 후 자신의 추한 외모를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돈을 훔치기도 했고, 할아버지와 의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바로 그 유명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슈바이처입니다. 사르트르의 어머니가 슈바이처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며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간 사르트르는 글쓰기와 공부에 전념하여 열일곱 살에 단편 소설 <병든 사람의 천사>를 발표했고, 이후 대학 교수 선발시험에 수석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많이 들어본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르트르를 ‘못생긴 외모’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최신효과(Recency effect)”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최신효과는 초두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이미지는 갖게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초기에 제시된 정보의 가치가 없거나 감소한 경우, 또는 최근 정보가 더 중요한 경우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외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설파한 인간의 자유와 의지, 윤리에 관한 사상이고, 우리 대부분은 사진보다는 글을 통해 먼저 그를 만나기 때문에 외모가 만들어내는 초두효과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사진을 보면 중후한 멋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사르트르의 명성에 기댄 “후광효과(Halo effect)”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장점을 근거로 다른 것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지요. 사르트르의 업적은 외모보다 오래 남아 초두효과를 바래게 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자신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능동적인 삶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쓸 수 있었기에, ‘못생긴 사르트르’가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사상가, 문학가가 되었습니다. 여자에게 거절당해 상처 입은 여성 혐오자가 되지 않고, 삶의 주체로서 여성의 자유와 인권까지 끌어안은 휴머니스트,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반려자 관계를 위해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을 시도한 관계 실험가가 되었습니다.

초두효과, 최신효과, 후광효과는 종종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범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외모가 좋은 사람은 첫인상도 좋고, 성격과 능력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을 쉽게 살 수 있으니 외모를 ‘관리’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니까요. 그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철학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초두효과, 최신효과, 후광효과와 같은 것들이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고, ‘본질’은 그 너머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