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낯설게 하는 장면들
냉장고로 감정을 고칠 수 있다면
- 영화 <데몰리션>
- 글 이성봉(아웃스탠딩 기자)
모두가 슬퍼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슬프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는 슬프지 않아?” 저는 “잠깐만,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너 진짜 이상하다. 사람들 다 슬퍼해, 공감 능력이 없는 거야?”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기뻐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진짜 좋은 일이다. 너도 기쁘지?”, “글쎄, 기쁜 일인지 생각을 좀 해보려고” 그러자 “무슨 소리야. 사회성이 없는 거야? 좋은 티 좀 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쉽게 ‘기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원하던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면, 우리는 쉽게 ‘슬플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생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가정하면, 우리는 예외 없이 인간이라면 ‘똑같은’ 감정을 ‘비슷한 시기’에 느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제 그 상황이 닥치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감정을 측정하는 기구가 있다면, 바로 알려줄 수 있을 텐데요.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할 때 정확한 단어나 문장을 찾지 못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내가 내 감정을 모르는 상태일 때도 많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살펴보고 곱씹으면서 감정의 줄기를 다듬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큰일이라면 더 오랜 시간 그 과정을 거쳐야 할 겁니다.
영화 <데몰리션>은 그 과정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분)’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타고 있는데요. 눈 깜짝할 사이 트럭이 덮쳤고요.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살아남았습니다. 데이비스의 주변 사람들은 거대한 슬픔에 잠겼습니다. 남편인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요. “힘내”,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다”, “정말 힘들겠어” 하지만 데이비스는 슬프지 않습니다. 주변을 의식해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기도 합니다. 그러나 명백하게 아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과는 감정이 다릅니다.
문제는 데이비스도 자기감정이 왜 이러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과 감정의 결이 다르다고 느끼면서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나’라는 의문을 품게 되죠. 그는 기차에서 낯선 남자에게 “제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아내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의 죽음을 다시 곱씹어봅니다. 트럭이 부딪치기 직전, 아내는 차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냉장고 아직 안 봤어? 물이 새, 벌써 2주째야”
데이비스는 건성으로 반응했습니다. “너의 냉장고?”라고 되물었죠. 함께 사는 집에 있는 냉장고인데, 우리가 아니라 ‘아내의 것’이라고 취급했습니다. 그 정도로 아내를 챙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내 게 아니면, 내 문제가 아니다, 이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었죠. 그리고 곧바로 트럭이 이들이 탄 차를 덮쳤습니다. 이후 데이비스는 아내가 없는 집에서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물이 새고 있습니다.
그때 아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오르는데요. “아빠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무언가 고치고 싶으면 전부 분해해 보면 안다’고 말이야” 장인도 데이비스에게 비슷한 말을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과 같아. 모든 검사를 해 보아야 하는 거야. 그러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네. 잠시 시간을 두고 마음을 살펴봐” 데이비스는 아내의 죽음에도 슬프지 않은 자기감정을 고치려고 하는데요.
무엇이든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냉장고부터 분해합니다. 회사에 있던 컴퓨터도 뜯어보죠. 심지어 집을 철거하는 곳에 가서 해체 작업을 하고 싶다면서 돈을 주고 막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아내와의 생활 흔적이 남아있는 집까지 부수기 시작합니다. ‘해체’라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죠. 영화는 내내 ‘해체’, ‘분해’하는 데이비스를 보여줍니다.
‘분해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데요. 데이비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화장실 문은 오래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어요. 몰랐던 거죠. 하지만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뜯어보고 싶어졌죠.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해졌거든요” 모두 분해하면 본질이 드러납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는 거죠. 데이비스가 찾고자 한 것은 그 본질입니다.
그 시작이 냉장고였고요. 최종적으로 아내와 함께 생활한 집을 부수는 게 된 겁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부수는 것은 ‘아내의 화장대’인데요. 아내가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을 공간입니다. 딱딱한 직선에 무채색으로 이뤄진 다른 가구들과 달리 홀로 곡선이 많고 빨간 등이 올라간 가구죠. 가장 이질적인 물건을 가장 마지막으로 해체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죠. 그제야 데이비스는 자기감정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오랜 시간 머물러 추억이 깃든 공간이나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본질을 따져보면 그 물건이나 공간이 아니라, 당시 내 감정과 추억에 집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그 물건과 공간이 파괴되거나 상실했을 때 오히려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복합적인 감정을 물건이나 집을 해체하면서 찾아간 건데요. 다 부수고 나서야 내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된 겁니다.
그가 감정을 알기 위해 한 일이 또 있는데요. 감정이 담긴 글과 말을 타인과 나눈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아내가 병원에 실려온 날, 자판기로 초콜릿을 사려고 했는데요. 그 자판기는 고장 나 있었습니다. 25센트를 날린 것에 화가 난 그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그 편지에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습니다. “자판기에서 초콜릿이 나와야 했는데, 안 나왔어요. 게다가 제 아내는 10분 전에 죽었죠”
고객센터 상담원 ‘카렌(나오미 왓츠 분)’이 데이비스의 편지를 읽게 되는데요. 이후 데이비스는 카렌과 친구가 되고요. 카렌의 아들 ‘크리스(쥬다 루이스 분)’와는 깊은 속마음까지 끄집어내며 가까워집니다.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과정 역시 일종의 감정 해체입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데이비스는 아내를 더 회상하고요. 아내와 함께하던 날들, 지나간 날들의 감정을 솎아내기 시작하죠.
결국 감정을 해체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택한 겁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파괴하는 일과 말이나 글로 타인에게 자기감정을 전달하는 일. 데이비스는 모두 해체하고 나서 깨닫습니다. 아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괴로움, 죽음에 대한 슬픔, 죄책감, 장인과 장모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 자신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지금 자기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제야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아내가 냉장고에 붙여둔 쪽지가 다시 눈에 보입니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 주지”
내 감정인데, 나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내 감정이 보편적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낄 때도 있죠. 감정의 속도는 모두 다릅니다. 감정의 종류는 복잡합니다. 모호하죠. 감정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냉장고나 집을 부수진 마시고요. 자판기 고객센터에 데이비스가 편지를 보낸 것처럼 말과 글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내 이야기를 타인과 공유하는 겁니다. 말과 글이 내 몸에서 나가면 감정을 해체하기 쉬워집니다. 해체된 감정으로 나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죠. 복잡할수록 더 부수고 깨야 합니다. 깨끗한 땅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감정이 완전히 부서지면, 더 튼튼하게 감정의 집을 재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