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본문 하단

식물관찰자의 일기

다시 물속에 살기 위하여

  • 신혜우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www.hyewoo.com)
식물관찰일기 이미지 1

땅에서 물속으로

며칠 전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뿌리를 관찰하려고 사 둔 창포가 시들시들하더니 퍼붓는 장맛비에 금세 싱싱해졌지요. 창포는 연못이나 도랑 곁에서 뿌리를 물에 담그고 사는 식물입니다. 화분에 자주 물을 주어도 잘 자라지 않더니 종일 내리는 장맛비 정도의 물이 필요했나 봅니다. 물을 좋아하는 수생식물인 창포에게 화분은 분명 살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요. 식물을 키우는 많은 이들의 고민 중 하나는 물주기일 텐데요. 꽃을 사면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물을 주어야 할지 꽃집에 묻곤 하지요. 식물에게 물은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뿌리가 썩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포 같은 수생식물들은 늘 뿌리를 물에 담그고 있어도 잘 자라고, 심지어 붕어마름처럼 온몸을 물에 담그고 일생을 사는 식물도 있습니다. 식물은 물속에 있던 일부 조류에서 진화해 애써 물 밖으로 나와 건조에 적응하여 육상식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육상식물 중 일부는 도로 물에 들어가는 걸 선택했죠. 그렇게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이 탄생했습니다.

물속으로 돌아간 다양한 식물들

수생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창포나 부들처럼 얕은 물에 뿌리를 내린 식물도 있고, 연꽃이나 개연꽃처럼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물 밖으로 잎을 내놓은 식물도 있습니다. 수련이나 마름은 뿌리는 깊은 곳에 고정하고 잎은 물 표면에 띄워 물의 흐름에 맡기는 걸 선택했죠. 더 나아가 붕어마름과 검정말은 미역이나 다시마같은 해조류처럼 완전히 물에 잠겨 살기로 했습니다. 부레옥잠과 개구리밥은 뿌리를 땅에 내리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게 떠다니며 삽니다.

식물관찰일기 이미지 2
△ 개연꽃 ©사진: 필자제공

수생식물이라고 하면 흔히 연꽃이나 수련처럼 꽃이 피는 식물을 떠올리는데요. 이런 현화식물 외에도 솔방울이 맺히는 겉씨식물이나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에도 수생식물이 있습니다. 길에 흔히 심는 메타세쿼이아와 닮은 낙우송은 물을 좋아하는 겉씨식물인데, 물가에서 높이 자라며 뿌리가 물 속에 잠겨 있기도 하지요. 나무 아래에 거꾸로 솟아오른 고드름처럼 물속에서 공기뿌리가 올라온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물속에서 부족한 공기를 얻기 위한 특수 구조입니다. 양치식물 중에는 물부추, 네가래, 생이가래 등의 수생식물이 있습니다. 물부추는 부추와 닮았으나 뿌리 쪽 부분을 물에 담그고 잎은 물 밖으로 뻗어 나옵니다. 잎의 아래쪽을 살피면 포자가 든 포자낭이 있어 양치식물임을 알게 되지요. 네잎클로버를 닮은 네가래도 양치식물처럼 보이지 않으나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입니다. 네가래는 뿌리를 물속 땅에 고정하고 수련처럼 잎을 물 위에 띄우거나 연잎처럼 뻗어 올리죠. 생이가래는 개구리밥처럼 물 위를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 양치식물입니다.

물속에서 산다는 건

살아가는 데 물이 필수인 식물에게 물속에 있어 늘 물이 넉넉하다는 건 축복일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숨을 쉴 공기가 모자라고 광합성 할 햇빛이 부족하다는 의미죠. 육지에 사는 식물들은 뿌리로 물과 양분을 흡수합니다. 줄기로는 몸체를 지탱하지요. 반면 수생식물은 뿌리 외에 물에 잠긴 줄기나 잎으로도 물과 양분을 손쉽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물을 찾아 여기저기 깊게 뿌리를 내리는 수고도 줄일 수 있지요. 게다가 물속에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한 튼튼한 줄기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물의 흐름에 맡길 수 있는 부드러운 몸이 유리하지요. 주변에 물이 많으니 물을 이용해 꽃가루를 전달하거나, 씨앗 혹은 모체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포기나 눈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풍부한 물과 반대로 부족한 공기와 햇빛을 얻기 위해선 묘책이 필요합니다. 연꽃의 뿌리인 연근이나 줄기를 잘라보면 구멍이 송송 있는데 이곳은 수생식물이 공기를 전달하기 위해 발달시킨 관입니다. 공기가 드나드는 관은 식물체를 햇빛이 있는 곳까지 띄우거나 물속에서 식물이 가라앉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광합성을 통해 생성된 산소는 물속으로 배출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물속에 사는 다른 생물에게 도움이 되지요.

물이라는 역동성

물은 흙에 비해서 역동적입니다. 물이 있는 곳의 모습은 다양하지요. 물살이 센 곳도 있고 연못처럼 정적인 곳도 있습니다. 흙탕물이 자주 생기고 부유물이 많은 더러운 물, 또는 맑고 깨끗한 물이 있는 곳도 있지요. 강수량에 따라 물의 수위도 자주 변합니다. 물이 얕은 곳에서 뿌리만 물에 담그고 사는 식물들은 육지에 사는 식물처럼 공기와 햇빛을 받기 좋지만 자주 변하는 수위를 잘 견뎌야 할 겁니다. 그래서 튼튼한 뿌리가 필요하지요. 물속에 잠겨 사는 식물들은 수위 변화에 덜 민감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광합성을 해야 하기에 고려해야 할 것이 있지요. 깊은 물에 사는 식물들은 물의 맑기가 중요합니다. 물속까지 햇빛이 닿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물관찰일기 이미지 3
△ 여러 수생식물들 사진: 필자제공

깊은 물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잎을 물 표면에 띄우는 수련 같은 식물들은 물 수위가 높아지면 잎이 물에 잠겨버립니다. 그래서 줄기를 더 성장시켜 잎이 물에 다시 뜰 수 있도록 하지요. 일반적으로 잎줄기의 성장이 멈추는 육지에 사는 식물과 다른 신기한 특징입니다. 매화마름이나 개연꽃 등도 육지 식물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집니다. 이 식물들은 물속에서 나는 잎과 물 밖에서 나는 잎이 다르게 생겼습니다. 물속에서는 물살에 맡길 수 있는 하늘하늘하고 부드러운 잎을 가지고, 물 밖에서는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햇빛을 받아 광합성하기 좋은 잎을 가집니다.

수생식물도 적응할 수 없는 지금

수생식물을 보면 물속으로 돌아간 포유동물인 고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고래가 우리와 같은 포유동물임에도 물속에 적응한 것이 놀랍듯, 육상식물 중 진화를 통해 다시 물로 돌아간 수생식물의 적응 능력도 그렇습니다. 공기와 물은 정말 다른 환경이고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적응한 수생식물임에도 환경파괴는 견딜 수 없나봅니다. 수생식물 중 가시연꽃, 매화마름, 물부추, 순채, 통발 등 많은 식물이 현재 멸종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하천이나 습지는 인간의 간섭이 크고 오염 물질이 배출되는 경로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환경 변화를 견디며 진화해 온 수생식물도 적응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죠. 물속에 있어 잘 알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경이로운 수생식물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