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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관찰자의 일기

건축과 조각이 된 식물

  • 신혜우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www.hyew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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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차지한 가이즈카향나무

궁궐, 서원, 고택 등의 오래된 정원을 살펴보면 향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정원에 함께 있는 은행나무, 배롱나무, 매화 등이 외국 식물인 것과 달리 향나무는 우리나라 식물이지요.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지에서 볼 수 있는데, 집 뜰에도 심어 우리에게 친근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정원에 있었던 이유는 제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향나무에서 제사에 올릴 향의 재료를 얻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그러한 풍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향나무를 많이 심습니다. 정확히는 향나무의 한 품종인 가이즈카향나무지요. 전통적으로 심었던 향나무가 아닌 가이즈카향나무가 왜 우리나라 정원을 점령했을까요?

불타오르는 모습을 잃어버리고

가이즈카향나무는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으로 영국왕립원예협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인기 있는 원예식물입니다. 향나무보다 잎이 촘촘하고 약간 비틀려 자라나 전체적으로 큰 불꽃같은 형태가 됩니다. 고흐의 그림에 등장하는 불타오르는 형태를 가진 나무들도 가이즈카향나무가 속하는 측백나무과 종들이지요. 그러나 본래 모습으로 자라는 가이즈카향나무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동글동글한 형태로 다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가이즈카향나무의 촘촘한 잎과 가지, 사철 푸른 잎사귀, 강한 생존력은 자르고 깎아 사람이 만들고 싶은 형태로 키우기 쉽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학교 정원에서 가이즈카향나무를 쉽게 만났습니다. 여러 번 전학을 갔지만 동글동글 귀엽게 깎여져 있는 가이즈카향나무가 늘 학교 정원에 있었지요. 어른이 되고 나서 다듬지 않아 거대한 불꽃 모양으로 자란 가이즈카향나무를 우연히 만나고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나무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거기서,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다오

인간이 식물을 원하는 형태로 다듬어 키운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고 그 방법도 다양합니다. 철사를 감아 고정해 키우는 분재, 거대한 도형이나 동물의 형태로 조각품처럼 만드는 토피어리, 담이나 벽에 바싹 붙어 자라도록 하는 에스팔리에(espalier), 담장을 대신하는 산울타리, 아치형 대문, 미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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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양목 산울타리를 이용한 조경 ⓒ필자 제공

특히 산울타리는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형태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있던 취병도 일종의 산울타리지요. 취병은 울타리에 살아있는 식물을 엮어 키우거나 살아있는 식물 자체를 엮어 울타리로 만든 것이라 전해집니다. 취병은 조선 시대에 궁궐을 그린 동궐도에도 기록되어 있지요. 민가에서는 예로부터 싸리나무나 탱자나무로 산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탱자나무는 가시가 많고 가지가 촘촘해서 쇠창살 대신 죄수를 가두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죠.

울타리는 경계를 표시하고, 울타리 내부를 보호하며, 바람이나 햇빛을 막고,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때로는 미적인 이유로도 설치하지요. 저는 산울타리를 볼 때마다 인간이 살아있는 생명체인 식물에게 울타리 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산울타리는 일종의 건축물이자 조각품인 동시에 살아있는 생명체니까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가을에 단풍이 들거나 낙엽이 지기도 하지요. 산울타리로 선호되는 종의 특징은 변형하기 쉽고, 키가 작으며, 잎과 가지가 촘촘하고, 사철 늘 푸른 것입니다. 많이 사용되는 종은 회양목, 사철나무, 주목, 피라칸다, 꽝꽝나무, 조릿대 등이며, 낙엽수 중에는 명자나무, 쥐똥나무, 화살나무, 산철쭉 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실력 좋은 정원사에 의해 변형이 어렵고 잎과 가지가 촘촘하지 않은 종도 사용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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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사과나무로 만든 에스팔리에 ⓒ필자 제공

인도의 거대 산울타리 ‘그레이트 헤지 오브 인디아’

인도에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을 가로지르는 약 1,770km 길이의 거대한 산울타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레이트 헤지 오브 인디아(Great Hedge of India)’라고 불렸죠. 어떤 부분은 높이가 3.7m, 폭이 4.3m에 달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교될 정도로 거대하면서도 살아있는 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놀랍죠. 이 산울타리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식물과 가드닝을 좋아하는 영국인과 어울리는 산물이죠. 이것은 사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이유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울타리를 경계로 한 쪽 사람들에게 소금과 관련된 세금을 받기 위해 설치된 관세 장벽이었죠. 영국인들은 밀수업자들을 막고 식민지 사람들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이 울타리를 고안했고, 튼튼히 유지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처음에는 죽은 나무로 만들었으나 울타리가 너무나 길어서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삭거나 부서져 구멍이 뚫리기 쉬웠죠. 그래서 가시가 많은 살아있는 식물로 산울타리를 가꾸게 됩니다. 그러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식물이 죽어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기후에 잘 맞는 종을 선택해 식물이 잘 자랐어도 흰개미나 쥐에 의해 구멍이 뚫리기도 했죠. 여러모로 이 울타리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한때 산울타리 관리와 관세 징수 관련 직원만 만 사천 명에 이를 정도였지요. 영국인다운 이 괴짜 같은 아이디어는 완벽히 실현되기 어려웠지만 30년 동안 지속되었고, 어찌 보면 이것은 자연과의 투쟁이었습니다. 결국 영국인들은 1879년 이를 포기하게 됩니다.

인간과 식물의 기묘한 동거

아보스컬프터(arborsculptor)라고 불리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arbor-’는 수목, 나무를 의미하는데 여기에 스컬프터(sculptor), 즉 조각가라는 단어가 붙었죠. 목재를 조각하는 조각가가 아니라 나무를 살아있는 채로 조각하는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가지치기, 접붙이기, 구부리기 등과 같이 오래전부터 인류가 나무를 다듬어 온 방식을 이용해 원하는 도형이나 글자 모양으로 나무를 키웁니다. 저는 처음에 그런 작품을 보고 분재보다 잔인한 작업이라고 느꼈죠. 그러나 어떤 이들은 다듬어 키운 나무들이 예술품인 동시에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구조물이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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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쿡(Peter Cook)과 베키 노시(Becky Northey)의 작품 '나무 사람' ⓒBlackash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식물을 키우는 것을 보며 어떤 이들은 식물을 학대하는 것이라 합니다. 가끔 제게 식물학적으로 볼 때도 학대가 맞는지 물어옵니다. 동물인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식물의 특성과 생존 능력을 떠올리면 의문은 더 많아지지요. 식물은 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고, 사람이 원하는 형태로 변형해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울타리가 되었다 하여 죽은 것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아니죠.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자연스러운 형태로, 원래의 서식처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식물을 이리저리 원하는 형태로 키우며 즐거워하는 인간, 지구에 나타난 이 특이한 동물들이 참 흥미롭다는 것입니다.